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역사== === 선사시대 === {{빈 문단}} === 게르마니아 === {{본문|게르마니아}} 역사적으로 [[게르만족]]은 [[인도 유럽어족]]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은 민족으로 스칸디나비아 및 유틀란트 반도 인근에 거주하던 민족이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 일대에서 확산된 [[할슈타트 문화]]의 [[켈트]]족이 중서부 유럽을 장악하는 동안에는 본거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으나, 기원전 750년 무렵부터 남하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에는 북독일 인근에, 서기기원 무렵에는 마그나 게르마니아 일대에 거의 정착하게 된다. === 신성 로마 제국 === {{본문|신성 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라틴어|Sacrum Romanum Imperium}}, {{독일어|Heiliges Römisches Reich}})은 962년부터 [[1806년]]까지 존재한 국가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패전으로 소멸하였다. 처음에는 정말로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로마]]에서 교황과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국가보다는 약간 느슨한 영방(領邦)의 형태로서, 나중에는 나라가 오만 가지 제후국으로 분열되면서 신성이고 로마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독일 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빌헬름 1세의 독일 제국이 제2제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독일 제국(제2제국)=== {{본문|독일 제국}} [[독일 제국]]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한 나라다. 소위 제2제국.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함으로써 제정이 폐지된 결과 멸망하였다. 독일사 최초의 국민 국가로, [[프로이센]]과 [[합스부르크]]가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으르렁컹컹대다가 결국 합스부르크를 제외한 다른 제후국들로 독일 제국이 이루어진다. 공식적인 성립 시점은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뒤 [[파리]]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연 시점으로 잡고 있다. 독일 제국은 당시 유럽의 2등 국가였던 독일계 제후국을 그러모아 단시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면서 얻은 자신감으로 제국 열강 놀이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대전에서 패하면서 내부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소멸하였다. 제국의 성립 과정에 대해서는 본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m/view.do?ntt_writ_date=20141231&bbs_id=BBSMSTR_000000000125&parent_no=1 기사참조.]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 ==== 바이마르 공화국 ==== {{본문|바이마르 공화국}}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어|Weimarer Republik}})은 [[1919년]]부터 [[1933년]]까지의 독일 민족국가를 부르는 명칭으로, 정식 국호는 독일국({{독일어|Deutsches Reich}})이다. 근대적 헌법인 [[바이마르 헌법]]으로 유명하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독일국은 '소멸'하였다. ==== 나치 독일(제3제국)==== {{본문|나치 독일}} [[나치 독일]]({{독일어|Nazis Germany}}) 혹은 제3제국(Third Reich)은 [[1933년]]부터 [[1945년]] 무조건 항복 시점까지의 독일 민족국가를 부르는 명칭이다. 정식 국호는 역시 독일국(Deutsches Reich)이었으며, 서류상으로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동일한 국가였다. 이 시기 독일은 인접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주테텐란트]]를 병합하고 대전 발발과 더불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등을 점령하였다. 또한 대전 중반부터는 [[유대인]]과 [[집시]], [[장애인]]은 물론이고 점령지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등 정부와 군, 민간인에 의한 심각한 인권범죄를 자행하였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나고,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독일의 점령지는 독립하였으며 독일에는 연합군 군정이 수립되어 1945년부터 1949년까지 통치하였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또한 4분할하여 연합군 관리 하에 들어갔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점령지에서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은 시장경제와 민주공화정을 채택하였다. 소련의 점령지에서 수립된 [[독일민주주의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채택하였다. 서독은 종전 이후 완전한 무에서 1990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특히 서독의 경제 성장기에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러 우방국으로부터 노동이민을 받았는데, 가까운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전통적 우방인 [[터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서독의 명목상의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베를린이 수도로 기능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본]]에 머물러야 했다. 동독은 종전 시점부터 계속된 소련의 물자 반출로 산업이 정상화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공산권 국가 중에 동독은 잘 사는 나라에 속했으며, 고정환율 제도로 뻥튀기된 GDP로 계산하면 1988년 당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ref>서류상으로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는 1:1의 교환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가치를 반영한 환율은 10:1 정도로 본다.</ref> ===독일 재통일=== 동독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1985년에 취임한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물꼬를 튼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1989년에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개방하자 동독 주민 1만 3천여명이 이 루트를 통해 자유진영으로 탈출하였다. 또한 같은 해 가을에는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외치며 개혁과 개방을 요구한 시위가 라이프치히 월요시위를 비롯하여 동독 전역에 퍼져나갔다. 이 시위는 나중에 "우리는 하나다"(Wir sind ein Volk)로 바뀌어 독일 통일에 대한 요구로 바뀌었다. 독일 통일의 물꼬가 본격적으로 터진 것은 1989년 11월의 국경 개방이었다. 동베를린 주민들이 장벽을 허물고, 서베를린으로 들어오는 동베를린 주민들을 환영하는 서독 시민들의 모습은 독일 재통일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동독은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며, 2차 대전 승전국들과 동서독 양국이 참석한 4+2 회담을 통해 통일 독일의 지위를 확인받고 그 국경선을 획정하게 되었다. 독일의 재통일은 1990년 10월 3일에 이루어졌으며, 구 동독 지역의 3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의 새로운 주로 가입하는 형식이었다. 요약: 이음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음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1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독일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