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정치 활동 == 김영배 의원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지역에서만 6번 당선되었으며 [[김대중]] 당 총재의 신임을 얻어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으며 15대 국회 전반기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몫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게 된다. 1987년 당시 그가 얻은 별명이 있는데 [[신민당]] 당론인 직선제 개헌에 반대해 내각책임제를 주장한 [[이철승]], [[이택희]] 의원을 제명처분할 때다. [[김영삼]], [[김대중]] 고문 두 사람이 이철승, 이택희 의원 제명에 합의한 뒤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가 칼을 꺼내들었다. 이철승 측의 조직폭력배 개입으로 당사가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제명작업을 끝냈다. 냉혹하다 할 정도의 일처리에다, 우렁찬 목소리, 짙은 눈썹, 벗겨진 머리 등 외적 이미지를 더해 사람들은 그를 ‘사무라이’로 부르기도 했다. 김영배 자신도 이 별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소 굴욕적인 별명도 있다. 국회에서 정부의 수재 대책을 따지기 위해 원고를 읽으면서 한자로 쓰여진 '이재민(罹災民)'이라는 글자를 '나재민(羅災民)'이라고 읽어 나재민이라는 별명도 유명하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0002324?sid=110]]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으로 활동했지만 경선 이후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후보 단일화 협의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당시 그는 '노무현으로부터 설렁탕 국물 한 방울 얻어먹지 못했다'라는 발언을 하여 조롱거리가 되었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2003년 3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하였다. 사실 당시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을 받기 직전이라서 차라리 자진사퇴를 선택한 것이다. 2013년 4월, 담도암으로 별세한다. 요약: 이음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음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