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변호사 활동 ==== 연수원 성적은 상위 30% 안팎으로 판사나 검사를 노려볼 수도 있었으나 [[노무현]] 변호사의 특강을 듣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후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도 시작했다. 이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쳤다.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 성남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자, 인구 50만의 성남 본시가지에는 응급의료센터조차 하나 없는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한다. 바로 옆 신시가지(분당)과 본시가지 간의 지역적 격차는 매우 심한 상황이었는데 병원까지 폐쇄되자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상당했다. 비교해보자면 인구 50만의 분당은 3개 병원에 2000여 병상이 있었지만 비슷한 인구의 본시가지(수정, 중원구)는 1개의 중소병원에 280병상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이재명은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성남시민들과 함께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했다. 시민들의 주민발의를 통해 18,500명의 서명을 받고 '성남시 시립의료원 조례'를 만들어 시의회에 상정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최초의 주민발의 조례를 단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해 버렸다. 이에 이재명은 방청하던 시민들과 함께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 죄로 수배됐다. 이후 '''이재명은 사회운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요약: 이음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음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