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 {{참고|전국노동조합협의회}}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와해 이후에도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민주화와 노동권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심상정은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했다.<ref>[http://wbook.liso.net/view.asp?menucode=read&book=2&number=1071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정책실, 편집실 등] {{웨이백|url=http://wbook.liso.net/view.asp?menucode=read&book=2&number=1071 |date=20160304104521 }}, 전노협 백서</ref> 1990년 1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수원]]의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창립대의원대회를 열고 [[단병호]]를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원래 [[서울대학교]]에서 열려고 하였던 이 대회는 [[노태우]] 정권이 경찰을 동원하여 원천봉쇄하여 수원에서 열리게 되었으며 창립 행사가 끝나자마자 130여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었다.<ref>[http://koreanliterature.kaist.ac.kr/leesangkyung/picture/picture_28.htm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이상경교수의 홈페이지 자료]{{깨진 링크|url=http://koreanliterature.kaist.ac.kr/leesangkyung/picture/picture_28.htm }}</ref> 한편, 심상정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창립일 하루 전 경찰에게 연행되어 창립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경찰서에서는 10년의 수배 생활을 해온 노동운동의 거물이 잡혔다며 "얼굴좀 보자"고 경찰들이 몰려들었고 창립식은 텔레비전으로 보아야 했다. 심상정은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1993년 법정에 섰다. 선고 공판이 있는 날 심상정은 만삭의 몸이었다.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싶으나 관련법규가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되어있다"는 설명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ref name="s49_50">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레디앙, 2008년, 49-50쪽, {{ISBN|89-959952-2-X}}</ref> 심상정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을 위해 발전적으로 해체될 때까지 조직국장 등의 역할을 맡아 일했으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요약: 이음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음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2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TemplateStyles 오류가 있는 문서 분류: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