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사회당의 해체와 협회의 두 번째 분열 === 1996년 1월 사회당은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고쳤지만 이에 반발하는 좌파의 일부가 [[신사회당]]을 창당했다. 9월에는 [[민주당 (일본, 1996년)|민주당]]이 창당되었는데 사회당의 우파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사실상 사회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런 사태 속에서 협회는 통일된 방침을 내지 못했고 협회원들은 사민당, 신사회당, 민주당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협회가 이대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급습하자 재건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내부 대립으로 마비 상태에 빠졌다. 사토 다모쓰가 대표 자격으로 소집한 1998년 2월 제31회 총회에서 신사회당 계열의 협회원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다음 달에 사카우시 데쓰로와 우에노 겐이치를 대표로 하는 사회주의협회를 재건했다. 사토 협회는 제31회 총회에서 가와구치와 사토 외에 고지마 쓰네히사를 공동 대표로 선출했다. 가와구치는 1998년에 사망했고 사토와 고지마는 각각 2012년과 2014년에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사카우시 협회의 경우 사카우시와 우에노가 2016년에 함께 대표직을 사임했다. 1998년 분열은 과거 사키사카와 오타의 분열과 달리 격렬한 비판은 없었고 분야와 지역에 따라 공투·상호 교류가 이루어졌다. 사카우시 협회는 2001년에 사회주의협회 테제를, 사토 협회는 2002년에 사회주의협회 제언의 보강을 채택했다. 두 협회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지 않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과학적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큰 차이가 없기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실태는 어떠하든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요약: 이음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음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1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