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 개요 == 우원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현재 제22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며 현재 당적은 무소속이다. == 생애 == 1957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아버지 우제화와 어머니 김례정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우제화는 황해도 연백군 출신이고, 누나 둘은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 |
(→원내대표로서) |
||
51번째 줄: | 51번째 줄: | ||
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 당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정치인에게 넥타이의 색은 보이는 메시지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므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당 색깔에 맞추는데, 대통령이 직접 야당의 색에 맞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 당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정치인에게 넥타이의 색은 보이는 메시지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므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당 색깔에 맞추는데, 대통령이 직접 야당의 색에 맞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
2018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법정 시한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을 | 2018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법정 시한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을 패싱하고 국민의당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워 공무원 인원을 양보하고 거의 모든 정부 정책을 지켜내 우 원내대표를 미심쩍어 하는 강성 지지자들도 이번에 우 원내대표가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우 원내대표 개인적으로는 이번 협상에서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상위 10%를 제외해 '보편 복지'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
드루킹 특검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통과,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그 외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했으나 야당에서 '무조건 특검 수용'을 주장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회가 정상화되나 싶었지만 5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대상에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판이 깨졌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겠다"고 하여 특검 관련 협의를 중단했다. | 드루킹 특검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통과,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그 외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했으나 야당에서 '무조건 특검 수용'을 주장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회가 정상화되나 싶었지만 5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대상에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판이 깨졌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겠다"고 하여 특검 관련 협의를 중단했다. | ||
2018년 5월 9일부로 원내대표 임기가 마무리되었다. 우 원내대표는 마지막 원내대표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원내대표 자리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 책무와 숙명이 참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면서 "한국당의 정치 파업으로 6월 국민개헌의 기회를 놓친 것은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뒤 한국당에 추경 및 민생입법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 2018년 5월 9일부로 원내대표 임기가 마무리되었다. 우 원내대표는 마지막 원내대표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원내대표 자리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 책무와 숙명이 참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면서 "한국당의 정치 파업으로 6월 국민개헌의 기회를 놓친 것은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뒤 한국당에 추경 및 민생입법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 ||
=== 제21대 국회의원 === | === 제21대 국회의원 === |
2024년 6월 10일 (월) 22:42 판
개요
우원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현재 제22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며 현재 당적은 무소속이다.
생애
1957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아버지 우제화와 어머니 김례정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우제화는 황해도 연백군 출신이고, 누나 둘은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모친인 김례정 씨가 남측 최고령자(당시 나이 96세)로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헤어진지 60년 만에, 상봉신청을 한지 15년 만에 누나 정혜 씨와 상봉이 이루어졌다.
경동초등학교, 성수중학교, 경동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김대중 지지운동에 참여했다. 이듬해인 1988년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재야민주화운동가 98명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약칭 평민연)을 통해 평민당에 입당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민당 인권위원회 민권부국장을 맡아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유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88-89인권백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1991년 노원구 제4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재검표 끝에 서울 노원구 을에서 당선된 임채정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 노원구 제3선거구에서 서울특별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2년 노원구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문제가 불거지자 주민대책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환경운동에 나선다. 시의원으로 당선된 후 폐기물 관련 조례 개정, 단식농성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앞장섰다. 결국 1996년 서울시와 주민 간의 쓰레기 소각장 운영협의를 4년간의 분쟁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특히 1996년에 경실련 지방의회 평가에서 전문성 등 7개 항목 모두 만점을 받아 700점 만점으로 환경관련부분 서울시의회 1등 의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도 얻었다.
제17대 국회의원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7대 국회에서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에 열린우리당 수석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8년에 재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민주당의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한나라당 권영진 후보에게 낙선해 재선에 실패했다.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2012년 원내대변인을 거쳐,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총무본부장으로 캠프 살림살이를 맡기도 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거쳐 2013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초동대응 실패, 해경 녹취록 공개, 해수부의 관리부실 등을 밝혀냈다.
을지로 위원회 위원장
2013년 ‘남양유업 갑질 사태’(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와 같은 연이은 대기업 갑질 사건이 벌어지자, ‘갑의 횡포를 막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자’라는 목적을 갖고 ‘을지로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을지로위원회’는 중구 을지로가 아니라 ‘乙’을 위한 길(路), 법(law), 노력(勞)라는 뜻이다.
을지로위원회는 각종 불공정·부당 행위로부터 자영업, 중소기업, 간접고용 비정규직 등 을(乙)의 권리를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2017년 전당대회 때 전국위원회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갑질 사례인 남양유업 교섭을 이끌어 낸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 기술편취로부터 중소기업 보호,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확보 및 정규직화 추진, 우체국 택배 기사 처우개선,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폐쇄 타결,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보상 중재, 간접고용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개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냈다. 더불어 2015년에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3,000명이 ‘을 당원’으로 입당하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1호 경제민주화 공약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정·청 을지로민생회의’를 만들어 민생과제 해결을 위한 당·정·청의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자영업, 중소기업, 노동자 등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 민생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민생연석회의’출범을 주도하여 카드 수수료 1%대 인하, 편의점주 최저수익보장 및 상생협력 확대, 제로페이 활성화, 택배노동자 과로사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데 기여했다.
제20대 국회의원
2016년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에 현역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그리고 당선되어 3선에 성공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우상호 후보에게 결선 투표에서 7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특위 위원들과 함께 영국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 본사를 방문하여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과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원내대표로서
2017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홍영표 의원을 61표 대 54표로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제19대 대통령 선거)으로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 당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정치인에게 넥타이의 색은 보이는 메시지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므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당 색깔에 맞추는데, 대통령이 직접 야당의 색에 맞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8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법정 시한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을 패싱하고 국민의당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워 공무원 인원을 양보하고 거의 모든 정부 정책을 지켜내 우 원내대표를 미심쩍어 하는 강성 지지자들도 이번에 우 원내대표가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우 원내대표 개인적으로는 이번 협상에서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상위 10%를 제외해 '보편 복지'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드루킹 특검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통과,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그 외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했으나 야당에서 '무조건 특검 수용'을 주장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회가 정상화되나 싶었지만 5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대상에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판이 깨졌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겠다"고 하여 특검 관련 협의를 중단했다.
2018년 5월 9일부로 원내대표 임기가 마무리되었다. 우 원내대표는 마지막 원내대표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원내대표 자리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 책무와 숙명이 참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면서 "한국당의 정치 파업으로 6월 국민개헌의 기회를 놓친 것은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뒤 한국당에 추경 및 민생입법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제21대 국회의원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4선에 도전한다. 상대는 한때 같은 당 동지로서 노원구 5회 지방선거를 지휘한 미래통합당 이동섭 전 의원이었지만, [19] 이변 없이 62%의 득표율로 큰 차이로 4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8월에 열릴 예정인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 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로 출마하게 되자 “당 안팎의 많은 분들과 상의한 끝에 비상한 시국에 치열한 경쟁보다는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당의 개혁을 일구며 뒷받침할 때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열린 조기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그러나 총 득표율 29.38%를 기록하며 35.60%를 득표한 송영길 , 35.01%를 득표한 홍영표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했다.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재명 지지를 선언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구 개편으로 3개였던 노원구 선거구가 2000년 16대 총선 이후로 24년 만에 2개로 줄어 노원구 갑 현역이던 고용진 의원과 공천장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자신의 지역구가 분해되어서 각각 갑, 병에 붙은 만큼 어딜 가도 불리했지만 을구 행정동 7개 중 4개가 갑에 붙었고, 갑구의 공릉동은 을구의 중계, 하계동과 연계가 되어서 좀 더 나은데다가, 무엇보다 병구의 김성환 의원과 절친한 사이라 갑구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싸움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와 예결위원장을 모두 지낸 중진의원인데다, 범친명계이기까지 해서인지 비명계로 분류되는 고용진 의원을 꺾은 것으로 보이며, 2004년 17대 총선부터 6회 연속으로 공천되는 기록을 세웠다.
본선에서도 60%에 육박한 득표율로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국민의힘 현경병 후보를 무난하게 누르고 5선에 성공하였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출마했으나 하필이면 경선 상대가 6선의 추미애 당선인이라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6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추미애를 제치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로 선출되었다.
압도적으로 당원의 지지를 받은 추미애가 아닌 극소수의 당원이 지지한 우원식의 선출로 인해 여론은 썩 좋진 않은 편이었다.
전반기 국회의장
2024년 6월 5일 열린 제22대 국회 첫번째 본회의에서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공식 선출되었다.
그 후 상임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협치하지 않는다면 민주당만으로 원구성을 마치겠다고 압박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거부하며 상임위원직 전원 사퇴를 선언하는 등 파행을 이어가자 18개 상임위원장 자리 중 11개를 본회의를 열어 선출하는 행보를 보여 기존 민주당 지지층의 불만을 빠르게 잠재우고 극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