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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민주통합당 내부엔 거물급 정치인들의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여론이 있었고 결국 [[제19대 총선]]에선 강남구을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낙선한다.
2012년 민주통합당 내부엔 거물급 정치인들의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여론이 있었고 결국 [[제19대 총선]]에선 강남구을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낙선한다.


낙선후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을 지내다가 2015년 1월 당내의 문제를 제기하며 탈당하고 국민모임에 합류하여 관악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새누리당의 [[오신환]] [[새정치민주연합]]의 [[정태호]] 야권[[무소속]] 정동영 3파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여론조사 상으로도 엎치락 뒤치락 하는 양상을 보였을만큼 관심 지역구였다 만일 이때 정동영이 당선이 되었다면 정동영으로선 정치적 부활을 이끄는 분수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1%를 얻으면서 3위로 낙선한다...이때 오신환의 득표율이 43.9% 정태호의 득표율이 34.2%로 단일화만 했다면 여유롭게 이길수 있었다.


그 후 중국에서 잠시 머물다가 고향인 순창에서 지내며 감자를 심고 있단다... 2015년 12월 20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순창의 본가까지 찾아와 복당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실상 거절을 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한다.--최악의 수--


국민의당에 합류하고 [[20대 총선]] 전주시병에 출마하는데 현역 의원인 [[김성주]] 후보를 꺽고 당선된다.


2017년 8월,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였으나 안철수 후보가 50.1% 가까스로 과반을 살짝 넘기며 결선투표 없이 그대로 낙선한다.-- 그래도 전북은 싹쓸이 했다고 한다. --





2022년 7월 22일 (금) 03:16 판

정동영.jpg

개요

1953년 7월 27일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MBC 기자 및 아나운서를 지냈으며 정계입문 후 4선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제2대 제6대 의장 통일부 장관 NSC 상임위원장 민주평화당 대표등을 역임한다 대표적인 경력으론 17대 대선 당시 사실상 범여권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한다.

정치 활동

1996년 1월,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 해 열린 15대 총선 전주 덕진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그리고 16대 총선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하는데 16대 국회 당시 천정배 신기남과 더불어 새천년민주당의 정풍운동을 이끌었다 요약하면 당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던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에게 퇴진 요구를 한것이다 또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경선에도 참가하였는데 이때 노무현이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도 경선을 완주하는등의 모습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이후 제2대 의장에 선출 된다 17대 총선을 이끌게 된다.

그런데 이때 젊은층의 투표를 독려하는 취지의 발언이 노인폄하 발언으로 이어지게 되며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하게 된다 선거결과는 열린우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로 승리하였으나 예상보단 의석수가 다소 미미한 결과였다....이후 통일부장관에 임명되며 의장직에서 물러난다.

통일부장관의 임기를 마친후 2006년 제6대 열린우리당 의장에 선출되며 지방선거를 치뤘으나 그 결과는....광역단체장 1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 여파로 의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 출마하여 이해찬,손학규를 꺽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게 된다 그러나 이명박에게 패배하게 되며 낙선한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 동작구을에 출마하였으나 뉴타운 열풍으로 정몽준에게 떨어지게 된다,그 이후 2009년 재보궐선거때 전주 덕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당 김근식 후보를 상당히 크게 앞서며 70%대 득표율로 승리하여 국회에 복귀한다 민주당에 복당후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에 밀린 2위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된다.

2012년 민주통합당 내부엔 거물급 정치인들의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여론이 있었고 결국 제19대 총선에선 강남구을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낙선한다.

낙선후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을 지내다가 2015년 1월 당내의 문제를 제기하며 탈당하고 국민모임에 합류하여 관악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새누리당의 오신환 새정치민주연합정태호 야권무소속 정동영 3파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여론조사 상으로도 엎치락 뒤치락 하는 양상을 보였을만큼 관심 지역구였다 만일 이때 정동영이 당선이 되었다면 정동영으로선 정치적 부활을 이끄는 분수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1%를 얻으면서 3위로 낙선한다...이때 오신환의 득표율이 43.9% 정태호의 득표율이 34.2%로 단일화만 했다면 여유롭게 이길수 있었다.

그 후 중국에서 잠시 머물다가 고향인 순창에서 지내며 감자를 심고 있단다... 2015년 12월 20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순창의 본가까지 찾아와 복당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실상 거절을 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한다.--최악의 수--

국민의당에 합류하고 20대 총선 전주시병에 출마하는데 현역 의원인 김성주 후보를 꺽고 당선된다.

2017년 8월,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였으나 안철수 후보가 50.1% 가까스로 과반을 살짝 넘기며 결선투표 없이 그대로 낙선한다.-- 그래도 전북은 싹쓸이 했다고 한다. --


여담

  • 6.25전쟁 휴전당일에 태어났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친분이 깊다 정동영이 대선후보 당시 이재명은 대선후보 비서실장으로 적극적으로 도왔고 이 인연으로 이재명의 성남시장 유세에 지원을 나서기도 하였다 2022년에 복당을 할수 있게 된 것도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성사된걸로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