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를 다스린 대제국으로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등장한 국가이다.

역사

로마 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27년부터 시작된다. 고대 로마가 제정으로 바뀌기 전 로마는 공화정이었는데 이는 두 번에 걸친 삼두정치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1차 삼두정치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결국 이 셋 중 카이사르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삼두정치의 균형이 깨지고 공화정이 무너질 뻔했지만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며 무산된다. 이후 2차 삼두정치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결국 옥타비아누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 공화정이 무너지게 된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남아있는 유일한 경쟁자였던 안토니우스를 물리쳐서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고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고 로마 공화정은 무너진다. 이것이 로마 제국의 시작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칭호를  프린켑스(제 1인자)로 칭한다. 그는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서 갈리아, 이집트, 소아시아 등 여러 속주 등을 다스리게 된다. 그는 여러 법을 만들어서 사회를 재정비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딸이 법을 어기자, 로마 밖으로 추방하기까지 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재위 기간동안 20여번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일리리쿰, 판노니아, 이베리아 반도 북부, 이집트 남부 등을 정복했다. 그러나 게르마니아 정복에는 실패했는데 게르마니아에 바루스 장군과 2만 군사를 보낸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족 지휘관 아르미니우스에게 토이토부르고 숲에서 대패한다. 이후 아우구스투스는 후계 문제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의 후계자였던 가이우스, 루키우스 등이 차례로 요절한다. 그리하여 그는 41년 간의 긴 재위기간을 마무리하고 양아들 티베리우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기원후 14년, 티베리우스가 즉위한다. 그는 검투사 경기를 중단시키는 등 재정 낭비 중단 정책을 실시했다. 다만 이로 인해 로마 시민들의 지지도는 떨어져 갔다. 또한 이후 그는 부하인 세야누스에게 나랏일을 맡기는데 그로 인해 그의 지지도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티베리우스는 37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그의 뒤를 이은 황제는 칼리굴라[* '꼬마 장화'라는 뜻의 별명]로 본명은 가이우스이다.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조카이며 25세의 나이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는 티베리우스와 반대로 검투사 경기를 다시 열고 놀이 문화를 발전시키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즉위하고 다음 해에 그는 고열에 걸렸고 고열이 다 나은 뒤로는 정신이 완전히 이상해져 있었다. 그는 자기 누이들 중 하나는 신으로 받들게 하고 나머지는 가두었으며 또한 돈을 물쓰듯 하였고 이 외에도 온갖 해괴한 짓들을 자행했다. 결국 그는 41년에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에게 암살당한다. 칼리굴라가 암살당한 뒤에 티베리우스의 또 다른 조카인 클라우디우스가 근위대의 추대로 황제가 된다. 그는 갈리아 등 속주에 있던 해방 노예들에게 행정 업무를 시켰다. 또한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 2만 여 명을 그리스의 코린토스로 추방했다. 그는 54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네로 황제의 어머니인 小아그리피나[* 칼리굴라의 동생]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클라우디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네로가 황제로 즉위한다.

54년에 클라우디우스의 죽음 이후 小아그리피나의 아들인 네로가 5대 황제로 즉위한다. 네로 황제는 즉위하고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했고 59년에는 정치적인 문제로 자신의 어머니인 小아그리피나를 살해했으며 62년에는 자신의 아내인 옥타비아를 살해했다. 네로 황제는 64년에 기름 창고가 폭발하면서 대화재가 일어나자, 화제를 돌리려고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화재를 일으켰다며 죄를 뒤집어씌웠고 결국 이로 인해 기독교도들은 대학살을 당하게 된다. 그는 충신이자 스승이었던 세네카에게도 자살을 명한다. 이렇게 폭정을 하던 네로 황제는 68년, 타라콘네시스 속주 총독 갈바 등에 의해서 쫓겨나고 자살한다. 네로 황제는 이처럼 폭군이었지만 로마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네로 황제가 죽고 반란군을 이끌었던 70세의 노장 갈바가 6대 황제로 즉위한다. 그러나 그는 재정 관리를 위하여 네로가 백성들에게 주었던 선물들을 빼앗았고 이로 인해 신하와 백성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그는 69년 1월에 반란을 일으킨 오토에게 살해당한다. 당시에 원로원은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오토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3달 만에 비텔리우스에게 쫓겨난다. 결국 비텔리우스가 로마 제 8대 황제로 즉위한다. 하지만 그는 언행이 좋지 않았고 온갖 쾌락을 즐기며 군단의 상태도 문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7월에 베스파시아누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12월에 비텔리우스는 쫓겨난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제 9대 로마 황제가 되어 플라비우스 황조를 연다. 그는 최초의 평민 출신 로마황제였다. 그는 70년에 아들 티투스를 보내 유대 민족의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74년에는 유대 민족 반란을 진압했다. 75년에는 콜로세움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콜로세움 완성을 보기 전인 79년에 세상을 떠난다. 7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남인 티투스가 황제로 즉위한다. 티투스가 즉위한 해 8월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 등 여러 도시가 파괴되었다. 80년에는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콜로세움이 완공되었고 티투스는 이에 기뻐 100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그는 81년에 갑작스럽게 병사한다. 사인이 말라리아라는 설이 있지만 이어 즉위한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의 짓이라는 설도 파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