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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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출생 | 1963년 2월 27일 대한민국 강원도 영월군[1]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성균관대학교 사회학 학사 |
종교 | 개신교 |
정당 | 무소속 |
경력 | 제 17대 국회의원 |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63년 2월 27일 강원도 영월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서울개봉초등학교, 오류중학교, 서울 우신고등학교(6회),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82학번)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9년 8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 기간 운동권으로 활동하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1985년 9월부터 1988년 2월까지 투옥을 당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의 후보 이신범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한나라당이 창당되어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천년민주당 김명섭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열린우리당 김명섭 후보,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유리했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친 여권 표가 열린우리당 김명섭, 새천년민주당의 김민석으로 갈린 덕을 제대로 봤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한나라당 당론과 엇나간 모습을 많이 보였다. 당 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 반대 주장을 벌인 것은 물론, 반대 진영의 영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칭송하고, 한나라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에 대해 비판하는 등 당과 맞지 않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서 보수 성향이 짙었던 김용갑 의원에게 이념적 좌파도 못 되어 열린우리당에도 못 들어가는 시류 영합형 정치적 좌파라며 당에서 빨리 사라지라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듣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반대하여 창조한국당 문국현을 지지하였다. 사실 그 전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참여했으나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만을 위한 불공정 경선이라며 중도 사퇴했다. 이로 인해 경선 출마를 위해 당에 낸 선거 기탁금 2억 5000만원을 반환 받지 못했다. 아무튼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에서의 유일한 정상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이러한 당과 맞지 않는 진보적 활동 탓에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에서 전여옥에 밀려 탈락하였는데,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문국현 등 4대강에 반대하는 다른 당 후보들을 지원하여 당 윤리위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이후 정치적 행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정계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선거 이력[편집 | 원본 편집]
실시년도 | 선거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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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총선 | 15대 | 국회의원 | 서울 강서구 을 | 통합민주당 | 18,180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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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 낙선 | |||
2000년 | 총선 | 16대 | 국회의원 | 서울 영등포구 갑 | 한나라당 | 29,425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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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낙선 | |||
2004년 | 총선 | 17대 | 국회의원 | 서울 영등포구 갑 | 한나라당 | 37,230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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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