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洪世和
Hong Sehwa.jpg
인물 정보
출생 1947년 12월 10일 (77세)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자유시 종로구 이화동[1]
국적 대한민국
직업 정치인, 언론인
정당 노동당
배우자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1녀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생애 초반[편집 | 원본 편집]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자유시(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2] 한때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과 졸업[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1967년 10월 자퇴하였다. 그 뒤, 다시 입시 재수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문리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였다.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하였으며, 1977년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3] 외교학과를 나왔다.

1977년부터 '민주투위' 조직과, '남민전' 조직에 가담하였고, 이후 무역회사에 입사,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건너갔다.

망명과 저술 활동[편집 | 원본 편집]

그 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전임
(권한대행)김은주
김혜경
제4대 진보신당 대표
2011년 11월 26일 ~ 2012년 4월 12일
후임
(노동당 공동대표)홍세화·안효상
전임
(진보신당 공동대표)홍세화·안효상
제4대 노동당 대표
2012년 4월 13일 ~ 2012년 10월 28일
후임
(권한대행)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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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2. 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
  3. 동숭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