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65번째 줄: |
65번째 줄: |
| == 역사 == | | == 역사 == |
| {{참고|커피의 역사}} | | {{참고|커피의 역사}} |
| 커피는 [[9세기|7세기]] 이전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자생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염소]] 목동이었던 칼디(Kaldi)가 우연히 염소들이 먹던 [[열매]]를 발견했고 열매를 마을에 가져오는데, 피곤함을 덜어주는 커피의 효능을 마을의 [[종교]] 수행자들을 돕기 위해 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곳에서부터 커피는 [[이집트]]와 [[예멘]]으로 전파되었다. 이집트와 예멘에서는 커피가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15세기]] 쯤에는 [[페르시아]], [[터키]]와 [[북아프리카]]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 |
|
| |
| 커피에 대한 처음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1511년]]에는 신경을 자극하는 성질 때문에 [[메카]]의 보수적인 [[이맘]]에 의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 음료의 인기, 특히 [[그리스인]]과 지식인 사이에서의 인기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오스만 투르크]] [[술탄]] [[셀림 1세]]에 의해 커피 금지령이 폐지되었다. [[카이로]]에서도 유사한 금지령이 [[1532년]]에 내려졌고, [[커피샵]]과 커피 창고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후 [[1554년]]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커피 가게인 '''카페''' '''키바 한'''(Cafe Kiva Han)이 들어서게 된다.<ref>[http://www.newenglandcoffee.com/coffee/coffee_facts/index.asp New England Coffee Company - Our Coffee<!-- 봇이 따온 제목 -->]</ref>
| |
|
| |
|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퍼졌다. 계기가 된 사건은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의 [[빈]]을 침공하면서 부터이다([[빈 전투|1683년 빈 전투 참고]]). 전쟁중에 [[터키]]에 머물고 있던 공직자 프란츠 콜스키츠키(Franz Kolschitzky)는 검은 빛깔의 열매를 발견해 들여오게 됐고 [[1683년]]에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지금처럼 커피에 [[우유]]를 넣거나 달게 먹는 방식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ref>A Brief History of Coffee (World class Readings2) p.68.</ref> 커피는 후에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커피를 처음 대량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상인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와섬]] 지역에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으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 |
|
| |
|
| 10년 동안 [[중동]]을 여행한 [[독일]]의 [[의사]] 레오나르드 라우볼프는 [[1538년]]에 커피에 대해 "[[잉크]]처럼 검은 [[음료]], 다양한 [[질병|병]], 특히 위에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 이것의 섭취자들은 [[아침]]에 돌려쓰는 [[도자기]] 잔에서 한 잔씩 마심. 이것은 [[물]]과 분누라는 관목에서 나는 [[열매]]로 만들어짐"이라고 적었다. 쉴레이만 아아(프랑스에서는 '솔리만 아가(Soliman Aga)'로 부름)가 [[1669년]] 7월 [[메흐메트 4세]]의 사절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접견할 때, 투르크식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선보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 권력층에게는 커피를 담당하는 하인을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ref>기쿠치 요시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다른세상, 2010, 235쪽.</ref> | | 10년 동안 [[중동]]을 여행한 [[독일]]의 [[의사]] 레오나르드 라우볼프는 [[1538년]]에 커피에 대해 "[[잉크]]처럼 검은 [[음료]], 다양한 [[질병|병]], 특히 위에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 이것의 섭취자들은 [[아침]]에 돌려쓰는 [[도자기]] 잔에서 한 잔씩 마심. 이것은 [[물]]과 분누라는 관목에서 나는 [[열매]]로 만들어짐"이라고 적었다. 쉴레이만 아아(프랑스에서는 '솔리만 아가(Soliman Aga)'로 부름)가 [[1669년]] 7월 [[메흐메트 4세]]의 사절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접견할 때, 투르크식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선보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 권력층에게는 커피를 담당하는 하인을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ref>기쿠치 요시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다른세상, 2010, 235쪽.</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