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 줄임말로 사민주의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혁명 등으로 급격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정의를 추구하며, 간접 민주제를 위한 정책과 소득 재분배 정책,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이익과 복지 정책을 포함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이며 개량적 사회주의 이념이다.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더 뛰어난 민주주의적, 평등주의적, 연대주의적 결과로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북유럽과 남유럽, 특히 북유럽 국가의 노르딕 모델에서 20세기 후반에 두드러진 사회 경제 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배경으로 하되, 그 안에 내포된 혁명적 사회주의를 배격하고, 간접 민주제 정치 체제를 바탕으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변형되었다.[1] 서유럽 초기의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소비에트 연방의 레닌주의 정치・경제 모델을 거부하고, 사회주의로의 대안적인 길이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타협을 약속했다. (대표적으로 자본가 및 정부와 노동자가 계급타협을 한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의 인정을 토대로 하는 혼합 경제를 받아들였는데, 공공의 소유로 하는 것은 필수적인 공익 설비와 공공 서비스 등 소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케인스 경제학, 국가 개입주의, 복지 국가와 연계되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를 질적으로 다른 사회주의 체제로 변혁을 통해 급격히 교체한다는 이전의 목표를 포기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는 노인, 아동 보호, 교육, 건강 관리, 교육, 의료, 근로자 보상 등의 보편적인 공공 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불평등을 억제하는 정책에 전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노동 운동노동 조합과의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으며, 노동자들과 다른 경제 이해 관계자들을 위한 공동 결정의 형태로 정치권을 넘어 전 사회로 민주주의의 영역을 넓힌다.

우익 경제학을 사회민주주의 복지 정책과 융합시키는 것을 표면상의 목표로 삼는 제 3의 길은 1990년대에 발전되었고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관이 있었던 이데올로기이지만 함부르크 강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결별하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제 3의 길을 신자유주의 운동으로 정의한다.

사회민주주의의 발전[편집 | 원본 편집]

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의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발전 과정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페르디난드 라살의 지지자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아,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었다. 1868년까지 마르크스주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공식적인 이론적 기반이었다.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치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고전적이고 정통적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주의가 도덕적이고 도덕적인 논쟁에 기초를 두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전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개혁 주의자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분열 이후 베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사회민주당은 의회 개혁을 위해 혁명적인 정치를 거부하고 사회화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사회민주주의는 사회개량주의와 관련을 짓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카를로 로셀리와 같은 기술적 민족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했고 때로는 일관된 과학적 대안으로 도덕에 호소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의 이념적 관계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신에 사회 정책 개혁을 통한 복지 국가 실현에 주력했다.

제1인터내셔널 시기 (1863–1889)[편집 | 원본 편집]

사회민주주의의 기원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주요 노동계급 정당인 페르디난드 라살에 의해 설립된 전 독일 노동자 협회가 생겨났던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4년에는 제1인터내셔널로 알려진 국제노동자협회가 설립되었다. 그것은 다양한 입장의 사회주의자들을 모았고, 처음에는 사회주의 이념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가 이끄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미하일 바쿠닌이 이끄는 아나키스트 사이의 갈등을 야기했다. 제1인터내셔널의 또 다른 문제는 개혁주의의 역할이었다.

라살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계급투쟁의 존재와 중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과는 달리 라살은 계급투쟁을 온건적으로 인정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부상에 일시적으로 존재해야만했던 계급 통치의 도구로 국가를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라살은 국가를 받아 들였다. 라살은 국가를 근로자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심지어 노동조합에 기초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다. 라살레의 전략은 주로 선거와 개혁으로 노동계급은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성인 남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편집 | 원본 편집]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1. “Social democracy”. Encyclopædia Britannica. 2015년 8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