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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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출생 1932년 12월 23일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군[* 현 논산시]
사망 2013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종교 천주교
경력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제 15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정치 활동[편집 | 원본 편집]

김영배 의원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지역에서만 6번 당선되었으며 김대중 당 총재의 신임을 얻어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으며 15대 국회 전반기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몫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게 된다. 1987년 당시 그가 얻은 별명이 있는데 신민당 당론인 직선제 개헌에 반대해 내각책임제를 주장한 이철승, 이택희 의원을 제명처분할 때다. 김영삼, 김대중 고문 두 사람이 이철승, 이택희 의원 제명에 합의한 뒤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가 칼을 꺼내들었다. 이철승 측의 조직폭력배 개입으로 당사가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제명작업을 끝냈다. 냉혹하다 할 정도의 일처리에다, 우렁찬 목소리, 짙은 눈썹, 벗겨진 머리 등 외적 이미지를 더해 사람들은 그를 ‘사무라이’로 부르기도 했다. 김영배 자신도 이 별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소 굴욕적인 별명도 있다. 국회에서 정부의 수재 대책을 따지기 위해 원고를 읽으면서 한자로 쓰여진 '이재민(罹災民)'이라는 글자를 '나재민(羅災民)'이라고 읽어 나재민이라는 별명도 유명하다.[[1]]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으로 활동했지만 경선 이후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후보 단일화 협의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당시 그는 '노무현으로부터 설렁탕 국물 한 방울 얻어먹지 못했다'라는 발언을 하여 조롱거리가 되었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2003년 3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하였다. 사실 당시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을 받기 직전이라서 차라리 자진사퇴를 선택한 것이다.

2013년 4월, 담도암으로 별세한다.